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페르디낭 포슈 (문단 편집) ===== 최후의 일각까지 버티다[* 원문은 "'held to the last quarter hour"] ===== [[파일:attachment/페르디낭 포슈/9th_army_at_marne.jpg|width=900]] 1차 마른 전투에서의 제9군의 지도.[* Marshal-Conrwall의 에서 발췌 및 번역. 지도가 매우 복잡함으로 다운받아서 보는 것을 추천한다.] 포슈는 명령대로 9월 6일과 7일에 좌익의 제5군과 함께 공세에 참여했지만 결과가 애매했다. 제5군과 함께 진격한 제42사단은 성공했으나 중부와 우익은 독일군의 강력한 공세에 밀려나가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반격을 취하려던 9월 8일에 폰 하우젠의 제3군이 아침에 '''[[착검돌격]]'''을 통한 기습을 펼쳐서 포슈군의 우익을 담당하던 제11군단을 혼란에 빠뜨려 '''12km의 거리를 후퇴시켰다'''. 거의 무모한 공세를 펼친 제3군도 피해가 상당했지만[* 서익만해도 4,50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을 정도였다.] 제11군단은 더욱 큰 피해를 입었다.[* 6500명쯤의 사상자] 그리고 후퇴과정에서 제11군단은 20~30개의 [[대포]], 몇 정의 [[기관총]]과 수천 명의 [[포로]]를 상실했다. 그러나 포슈는 재빨리 제11군단의 지휘관 에이두에게 반격 명령을 내렸다.[* 이때 보낸 메세지가 "이건 승리의 문제가 아니다. 승리는 내일의 것이지. 그러나 내일 승리를 탈취하려면 자네는 오늘만큼은 버텨야 한다네. 전군의 안전이 자네 군단의 명예와 균형에 달려 있다. 최대한 빨리 반격하도록."] 상당한 우려 속에 진행된 반격이었지만, 다행히도 제3군도 너무 성급하게 착검돌격을 진행했기에 보급 곤란에 빠졌다. 혼란 속에 공격받은 독일군은 격퇴당했고 제11군단은 위치를 유지했다. 이때쯤 포슈의 매우 유명한 명언, "'''나의 중앙은 무너지고 있고 우익은 철수중이니 그야말로 최고의 상황이다. 나는 공격할 것이다.'''" 이 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 포슈가 해당 발언을 했다는 증거는 적다. 무엇보다 1차 [[마른 전투]] 때 포슈를 보좌하던 [[막심 베이강]]은 위의 발언을 완강히 부정했는 데다가 [[레몽 푸앵카레]] 또한 전후에 포슈가 그런 말을 하지 않았어도 전장에서 그렇게 활동했다고 부정했다. 애초에 이 발언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전의를 잃지 않고 싸움에 임하는 맹장 포슈의 모습을 부각하고자 [[언플|프랑스 언론에서 유명화시킨 것이지]] 모든 상황에서 공세만 펼치는 공세주의자로서의 모습으로 해석하는 것은 오해라 할 수 있다. 막심 베이강조차 저 발언에 대해서 "사실은 아니지만 포슈의 에너지를 보여 주니 적절하다"라 평했다. 우익을 안정화하기 위해서는 재빠른 지원이 절실했지만 포슈는 예비대를 모두 소모했다. 제12군단은 악착같이 버티고 있었지만 여전히 밀리고 있던지라 포슈는 제5군의 루이 프랑셰 데스페레(Louis Franchet d'Esperey)에게 양도받은 제10군단에게 제9군의 좌익을 맡겼다. 기존에 좌익에 배치되어 있던 제42사단을 '''16km를 행진 후 곧바로 투입해''' 프로이센 근위군단의 가세로 밀려나던 제11군단의 반격에 보태도록 했다.[* 예비대를 벌써 소모해서 얼마 전까지 싸우던 병력을 10km가 넘는 거리를 도보 행진으로 옮긴 후 곧바로 전투에 투입시키는 상당히 무모한 작전을 시행하는 것을 보면 아직 포슈가 군 지휘에 미숙하다는 반증이다.] 9월 9일, 저녁에 도착했던 제42군단은 오후 6시부터 제3군에 대한 반격에 참여했으나 그 시점에서 독일군은 이미 퇴각한 지 40분이나 지난 이후였다. 독일군의 후퇴로 아슬아슬했던 제1차 마른 전투는 연합군의 승리로 끝맺었다. 포슈는 후퇴하는 독일군을 추격하고자 했으나 병사들의 피로에 좋은 성과를 얻지 못했다. 10일에 다시 재개했으나 이때는 후위대의 강력한 저항을 맞이했다. 75mm [[야포]]를 위한 포탄이 고갈되기 시작했으며 참호를 파기 시작한 독일군을 밀어내기 위해 필요한 중포 또한 얼마 없었다. 프랑스군 좌익에 병력을 집중하기 시작한 조프르에게 휘하 군단 중 하나를 파견보냈고 이에 제9군의 추격은 더욱 더뎌졌다. 9월 23일에는 중요 전선이 [[북해]] 지역으로 옮겨 가는 것을 깨닫고는 조프르에게 제9군의 공세를 미뤄 두자고 건의하기까지 한다[* 이런 부분은 공세 변태인 양 묘사되는 비판과 상당히 괴리가 있는 모습이다.] [[조프르]]는 포슈에게 제9군의 "용기(valour), 활력(vigour), 끈기(tenacity)"를 칭찬하는 메세지를 보냈다. 그와 더불어 전투 이후 포슈에게 포슈의 외할아버지 또한 받은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선사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